- 단재 신채호 선생 순국 84주기 추모식 개최 -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며 우리민족의 역사를 일깨우다

최주철 기자

작성 2020.02.20 10:39 수정 2020.02.20 10:39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위대한 역사를 되찾아 낸 민족주의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 순국 84주기 추모식’이 오는 21일(금) 오전 11시, 청주시 상당구 단재 묘소에서 (사)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회장 유인태) 주관으로 열린다고 밝혔다.


이 날 추모식은 장숙남 충북남부보훈지청장을 비롯한 각계인사, 독립운동 관련 단체 대표 및 회원, 유족, 시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단재선생 약력보고, 헌사 및 추모사, 추모공연, 헌화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신채호 선생(1880. 12. 8.∼1936. 2. 21.)은 충청도 회덕현 산내면 어남리(現 대전 중구 어남동)에서 출생하였다.

  어릴 적 유교학문 수양에 힘썼으나, 1898년 성균관에 입학한 후 개화사상을 접하고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적극 활동하였다. 1905년 4월에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바로 사직하였다. 그 해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관직 진출을 포기하고《황성신문》에 논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양기탁의 요청으로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활약하며 일제의 침략과 친일파의 매국행위를 비판하고 국권회복에 민족이 힘쓸 것을 역설하였다.


  1907년 안창호, 이갑 등과 더불어 비밀결사 ‘신민회’의 창립위원으로 참가하여 신민회의 이념을 논설에 반영하는 등 대변인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였다. 선생은 그 해 대구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전개된 ‘국채보상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고,《기호흥학회월보》,《대한협회회보》등 언론을 통한 애국계몽운동에 주력하였다. 뿐만 아니라,《독사신론》을 비롯한 많은 역사 관련 서적을 저술하여 근대민족사학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국내 국권회복운동이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하여 1910년 신민회 동지들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하여 무관학교 설립, 교관양성 등 독립운동 방안을 협의하였고, 1911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건너가 교민단체인 ‘권업회’를 조직하고 기관지인《권업신문》의 주필로서  러시아 동포들의 독립사상을 고취하고 권익을 옹호하는 등 항일언론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이후 만주 일대의 고구려, 발해 유적지를 답사하는 등 국사 연구와 문필 활동에 힘쓰던 선생은, 1919년 4월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가하여 의정원 의원, 전원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중국 북경을 중심으로 상해, 천진 등을 무대로《조선상고문화사》, 《조선사연구초》집필 등 역사연구에 힘썼다. 이후 무정부주의 독립운동에 관심을 갖고 ‘무정부주의동방연맹’ 활동 등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나,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위해 대만으로 가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여순(뤼순)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1936년 옥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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